오늘은 처음으로 미국 영화가 아닌 일본 애니메이션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일본에 대한 우리의 국민감정이 좋지 않아 일본과 관련된 콘텐츠를 소개한다는 것이 살짝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문화의 영역에서는 좋은 것은 좋게 받아들이고 교류가 활발했으면 하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에요. 그런 면에서 오늘 소개해드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라는 영화는 보시고 나면 여운이 남고 의미를 던져줄 좋은 콘텐츠라고 여겨지기에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그 작품들 하나하나가 다 소개해 드릴 만한 가치가 있는 훌륭한 영화를 많이 만들어냈는데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중에서도 손꼽는 대표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도에 개봉한 작품이고 애니메이션 최초로 제52회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했고 제75회 아카데미에서는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으며 흥행에 성공했으니 얼마나 많은 마니아층이 있는 작품인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포스터에서 아주 당찬 표정으로 서있는 꼬마가 바로 영화의 주인공 치히로 입니다. 10살이 된 치히로는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이사를 하던 중 길을 잘못 들어 이상한 터널 앞에 서게 되는데요, 치히로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터널 안으로 들어간 부모님은 눈앞의 진수성찬의 유혹을 못 이겨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치우게 되고 결국 돼지로 변하게 됩니다. 왜 치히로의 뒤에 돼지 2마리가 슬픈 표정으로 서있는지 이제 아시겠죠? 치히로는 부모님을 다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해결책을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니게 되고, 부모님과 함께 들어선 터널 안이 인간의 세계가 아닌 신의 세계라는 것을 알아내게 되죠. 이때 치히로를 돕는 아주 중요한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이름은 '하쿠'입니다. 하쿠는 치히로가 마녀 유바바의 온천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게 됩니다.
하쿠: 유바바는 누구든 이름을 뺏어서 지배해. 센인척 하고 진짜 이름은 숨겨.
치히로: 본명을 거의 빼앗길 뻔 했어
하쿠: 이름을 뺏기면 돌아가는 길을 모르게 돼. 난 아무리 해도 생각이 안 나.
영화 제목에 나타난 센과 치히로는 둘 다 치히로를 지칭합니다. 이 영화에서 이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요, 유바바는 직원들의 이름을 빼앗아 영원히 돌아가지 못하도록 한 뒤 노동을 착취하고, 하쿠 또한 이름을 잃어버려 유바바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치히로에게는 센이라는 이름을 쓰고 진짜 이름을 숨기게 해서 결국 인간 세계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죠. 이름을 뺏기면 내 존재를 잃게 된다는 점에서 '이름'이 존재 자체만큼이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이 이 영화의 주요 포인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바바는 하쿠에게 친언니인 제니바의 도장을 훔쳐오라고 명령하기도 하는데요 제니바의 이름이 새겨진 도장 또한 이름이 존재를 대신한다는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쿠가 일하게 된 유바바의 온천에는 각종 신들이 찾아와 목욕을 하고 피로를 푸는데요. 여기에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 하나인 가오나시가 등장합니다. 가오나시는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없고 다른 신들과 어울리지 못해 주변을 배회하는 얼굴 없는 괴물입니다. 오직 타자에 빙의해 목소리를 내는 가오나시에게 따뜻하고 순수한 치히로의 행동은 감동을 주게 됩니다. 가오나시는 치히로가 원하는 것은 다 주겠다고 말하며 따라다니지만 치히로는 단호하게 원하는 것이 없다고 말하죠. 이 영화에서는 이처럼 세속적인 욕망을 비판하는 듯한 요소가 곳곳에 숨어 있는데요, 신계의 음식을 허락도 없이 게걸스럽게 먹고 돼지로 변한 치히로의 부모님이나 직원들을 착취하여 돈을 모으는 유바바, 그리고 가오나시의 유혹에도 욕심을 내지 않고 단호히 뿌리치는 치히로의 행동에서 이를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습니다. 치히로가 자신의 제안을 거부하자 난폭하게 변했던 가오나시는 치히로가 준 경단을 받고 온순해져서 그림자처럼 치히로를 따라나서기도 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상징성은 물질주의에 대한 비판만이 아닙니다. 영화에는 온천에 찾아온 손님으로 오물신이 등장하는데 원래는 강의 신이었지만 인간에 의해 더럽혀져 오물신이 되었습니다. 유바바마저 어쩔 줄 모르는 오물을 뒤집어쓴 이 신을 치히로만이 정성스럽게 목욕하도록 도와주고 결국 오물을 다 토해내도록 해주게 되죠. 가벼워진 몸으로 다시 강으로 돌아가는 오물신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들리는 듯하네요. 또한 하쿠도 강의 신이었던 것으로 나옵니다. 하쿠는 인간의 자연파괴로 더러워진 개천을 떠나기로 하고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긴 후 심복이 된 것이지만 치히로를 만나고 이름과 옛날의 기억을 되찾게 되는 겁니다.
치히로: 하쿠 엄마에게 들은 얘기야. 기억은 흐리지만 내가 어렸을 때 개천에 빠졌었는데 그 터에 아파트가 들어섰대. 문득 생각이 났어. 개천 이름이 코하쿠 개천이었어. 네 본명은 코하쿠 야.
하쿠: 치히로 고마워. 내 진짜 이름은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
치히로: 니기햐아미?
하쿠: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
애니메이션 한 편에 이렇게 다양한 숨은 의미와 해석이 있다는 사실에 너무 어렵다고 생각이 되실 수도 있을 텐데요, 의미를 이해하기 앞서 영화의 스토리나 구성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잘 짜여 있어 충분히 편하게 보실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런 점 때문에 사실 많은 어른들이 이 영화의 팬이 되는 것이기도 하고요. 물질만능주의, 자연훼손에 대한 비판, 이름이 가진 존재의 상징성, 순수한 노동의 중요성 등 영화에 나타난 각종 메시지들은 잠시 제쳐 두고 어린 소녀가 한 소년의 도움을 받아 돼지로 변한 부모를 구하고 인간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로 마음을 열고 보시면 어떨까요? 영화를 보고 나면 아마 자연스럽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다른 작품들을 나도 모르게 찾고 계실 겁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넷플릭스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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